일반상식

유비,관우,장비,제갈량 묘.

소불 笑佛 2016. 12. 7. 17:23

 도원결의 형제중,  관우가 제일 먼저 죽으니,219년,

 

형주를 지키면서, 위나라와  오나라의  틈새를 엿보고 있었는데 - -

 

오나라 여몽이 총사령관에 있어 관우가 오나라 방면에 주력을 배치하고 대비하였다.

이에 여몽은 병 을 칭하고  육손에게 총사령관직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자,

관우는 병력을 빼서 위나라 방어및 공세준비를 하였다.

 

이틈을 간파한 여몽이 기습으로 형주를 타격하니,

관우의 경계병이 모두 무너져  조기경보를 받지 못하고

각 방면 부장들이 고스란히 차례로 투항한다.

 

관우는 탈출하여 후일을 도모코자 하였으나,

이미 여몽의 퇴로차단에 걸려 변변히 전투도 못해보고 전사한다.

 

오나라는 동맹국인 위나라 조조에게 관우의 머리를 바치니,

조조는 관우를 얻기위해 적토마를 보낼정도로

관우의 인품을 익히 알고 있던터라 ,

향목으로 몸을 만들어 붙이고 낙양에 후하게 장례를 지낸다.

 

그래서 관우의  머리는 낙양의  관림에 뭍히고,

나머지  관우의 몸은  형주의 관우사에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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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관림

(림은 무덤중 최고의 호칭으로 공림과 관림 두개뿐이다)

 

 

 

 

 

 

 

 

 

 

 

 

 

 

 

 

 

 

 

형주에있는 관우의  몸을 장사지낸  관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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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다음으로 죽은자는,

장비로 221년이다.(관우졸- 2년뒤)

 

관우 형님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정벌을 준비하는데,

3일내로 모든 장병은 흰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출정한다고 명령하달.

이에, 시간이 너무짧고, 천이 부족하여 준비 상태가 부진하자,

 부장 범강과 장달이 공개적으로 혼쭐이 난다.

다음 문책이 두려운 범강과 장달은

그날밤 잠든 장비의 목을 자르고, 오나라로 도주한다.

도중에 오와 촉이 화해 했다는 소문을 듣고,

어찌 할바를 모르던 두 장수는  장비의 머리를 양자강에 버리는데,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 오고,

어부는 봉황산 아래 묻어주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장비의 머리라는것이 밝혀진다.

그래서,

장비의 머리는 운양현 비봉산하에 있고(삼협댐 건설시 옮겨진다.)

장비의 몸은 낭중성에 묻히게 되니,

관우 형과 장비 아우의 운명이 비슷하다. 

 

낭중의 장비무덤

 

 

 

 

 

장비는 원래 정육점(도살장) 칼잡이었다.

 

그래서 낭중시에는 장비표 육포가 유명하다.

 

 

운양현 장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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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 소열제   223년4월 24일 병사, 63세.

221년 유비는 촉한 황제에 등극하고,

아우들의 복수를 위해, 10만 대군을 동원하여 오나라를 공격하는데 --

먼저 관우가 죽고 빼앗긴 형주를 공격한다.

파죽지세로 공격하여 차례로 점령해 나가는데,

222년 신하, 부하들이 정지할것을 건의해도, 이릉 방면으로 계속 공격한다.

 

오나라 손권은 고심끝에 육손을 다시 불러 방어군 책임자로 임명하니,

육손은 싸우지 않고 삼협 요새지에서 방어만 한다.

 부장들이 육손을 힐난하며 못 미더워 하는데,

222년 6월 더운 여름이 되자 유비진영 대군이 숲속으로 진영을 옮겼고,

이를 간파한 육손이 일제히 화공전을 하니,

일거에 유비군이 혼란속에 상호지원이 되지않고 대군이 흐지부지 되고만다.

유비는 수군과 육군 모두 잃고,

겨우 백제성으로 도주하여 자책하다 

223년 4울 24일 화병으로 죽으니 63세다.   

223년 8월 성도로 옮겨 혜릉에 모셨다.

 

성도 혜릉 =한소열제 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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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234년 오장원 병사, 54세.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촉한을 강하게 하려고 ,

남(南)벌을 하여 맹획을 굴복시키고,(칠종칠금)

227 - 234년 8년간 5차례 북(北)벌을 한다.

234년 제갈승상은 10만대군을 준비하고,

유선 황제에게 350자에 달하는 출사표를 바치고,

오장원으로 북벌을 떠난다.

 

이에 맞선 위나라 대장군 사마의는

먼저 공격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만 있는데 - - -

제갈량은 병세가 깊어 지자, 

치성으로 10년이상 더 살 수 있는 운세를 보고

칠일간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열심히 치성중에

5일째 부하장수의 실수로 촛불이 꺼졌다.

 

삼국지 영웅의 마지막 성인이 오장원에서 병사하니 54세였다.

제갈량은 정군산아래  관하나 들어갈 크기로, 

일체 부장물 없이 장례지내라 유언하였다.

지금 전쟁중에 장례식에 힘을 낭비하지 못하게 조치한듯하다.

 

 

사천성 성도 무후사(유비묘 옆)

 

 

 

 

 

 

 

 

 

 

 

 

섬서성 한중시 기산현(면현) 정군산.

 

정군산 주변에 무후묘를 만들고,

2km 떨어진 곳에 무후사 사당을 후대에 만들었다.

 

 

무후사 사당

 

 

 

 

 

 

정군산하 무후묘

 

 

 

 

 

 

 

 

 

 

 

 

 

 

 

삼국지 촉한 영웅중,

관우는 삼국시대 명장- 송나라대- 왕,

명나라대 - 황제, 청대 -군신 으로 추존되니,

 

동남아 각국에 문신 공자묘와, 무신 관우묘가 여러곳에 세워진다.

우리나라 각지방 향교안에 공자 문묘가 있고 

 

우리나라 각지에 관운장 무묘가 있다.

한양에는 동대문앞에 동묘(동관묘)가 지금도 있고,

남대문, 서대문 앞에도 관우신을 모시는 무묘를 두어 침략을 예방했다.

 

제갈공명은 동남아 각국에 사당을 지어 모시는 곳이 더러 있으니,

서울 남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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