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홍,유릉은 그 위상이 애매하다.
조선왕릉 세계유산이라면,
이는 분명 조선의 26대 27대 왕릉인데,
홍,유릉을
조선의 26대, 27대 왕으로 매김하기엔
역사적 사실 규명과 함께
후손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하겠다.
사적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록할때
대한제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워버렸던가?
어찌하여 조선의 26대, 27대 왕으로 하였는지?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묘소는,
왕릉과 같은 규모로 영원을 1970년대에 조성하였다.
입장 요금은 1,000원인데,
경로는 무료다
본래 산이 아닌 농토에 조성한듯,
저지대에 습하고, 독일 가문비, 잣나무, 소나무, 상수리 등
거목들이 울창하다.
통상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으로,
가운데는 원으로, 주변은 4각으로 하는데,
여기는 주변도 둥글게 만들었다.
홍릉 간판이 밖에것과 달라서 헷갈리게 해 놓았다.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 릉이라고 하였다.
조선26대 고종 왕도 되고,
대한제국 초대 황제도 된다고 이해하자.
그리고 1907년 이후에는 태왕으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 - - -
그래도 1919년 일제는,
황제 예우에 맞는 장례절차와
조선 역사에 없는황제릉 조성을 묵인 하였는가보다.
역사를 알고있는 향나무
홍살문부터 침전까지 제향공간,
그뒤로 황제릉침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의 모든 왕릉은,
아래와 같이 능침 주변에
석상을(석호, 석양, 석마, 문,무인석) 조성하고,
제사를 올리는 정자각 앞에는 석물이 없는데,
황제릉에는,
능침 주변에는 석물이 없고,
정자(丁字)각 대신 침전을 짓고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석물을 배치하였다.
석물은 문무인석과 다양한 동물을 배치하였는데,
당, 명나라 황제릉을 표본으로 했기에,
당, 명나라에는 있고,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도 배치 되었다.
석마 = 석마는 좌우에 두개씩.
낙타
해태
사자
코끼리
기린
무인석, 문인석
침전 = 제사 올리는 공간
좌 하단에 보면
조선 제26대 고종태황제 능이라 했는데,
조선에 황제가 있었던가?
이는 조선 제26대왕 고종,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능
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황제 능침은 소박하게 조성 되었다.
주변에 석물이 없으니 왕릉보다 더 왜소해 보인다.
비문에는,
조선 26대왕의 흔적은 없다.
대한 고종태황제만 있을뿐.
홍릉이란 명칭은,
1895년 8월 명성왕후 피살후,
동구릉에 숙릉으로 산릉공사를 하였는데,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중지되었다가,
1897년 10월 대한제국선포후 명성황후시호와 함께
황후의 능을 청량리 북쪽(수목원 자리)에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가,
1919년 태왕 고종 승하후 이곳에 황제능을 조성하고,
명성황후릉을 천장하여 합장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하였다.
이래저래
고종은 조선 제26대 왕(1863 ~1897)과
대한제국 1대 태황제 (1897.10. 12 ~ 1907)를
지내셨으니,
순서대로 기록하던가,
종합 안내간판, 릉간판, 비문표시 곳곳에 다르게 기록하여
헷갈리게 하지말고 올바르게 정립해야 할것이다.
유릉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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