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마을에 다녀 왔습니다.(14.3.6)
경복궁역 1번출구에 10:30 집합하였다.
경복궁역에는 다른 팀들도 여럿 모여서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1번 출구에는 세종마을 안내판이 있다.
2010년부터 세종마을이라 부른다.
먼저 백사 이항복 집터를 탐방한다.
이항복은 1556년 명종 11년에 태어나서 광해군 10년 1618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9세때 부친 이제현이 사망하고, 16세에 모친마져 사망한다.
권율의 사위가 되었고, 1580년 25세에 알성문과에 급제한다.
경주 이씨인 그는 호가 백사, 필운, 동강 이다.
1592년 임진왜란때 도승지로서 선조를 의주까지 성공적으로 호위하여 오성대감(부원군)에 진봉 되었다.
두왕자를 평양까지 호송하여 형조판서에 특진되었고,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겸임하였다.
1593년 세자(광해군)를 도와 경상/전라에 분조(조정 출장소 개념)를 설치했을때 대사마가 되어 세자를 보필하였다.
그후 병조판서를 하였고 이때가 아마도 30대 후반이었을 듯 싶다.
아무튼 전란중에 도승지에 이어 병조판서를 하였고, 좌의정을 거쳐 후에(1600년) 영의정까지 역임 하였다.
병조판서 재임시에 임진왜란 뒷수습이 제대로 안되어
1597년 정유년에 14만 왜군의 재침을 받아 국토가 초토화 되었으니, 병조판서를 성공적으로 했다고 보아야 되나?
국가 생존/안보적으로 당시 상황의 세부적 내막은 평가 할 수 없지만,
후에 영의정 까지 올랐다니 긍정적 평가를 받은것인가.
광해군 재임시 북인 정권하에서 좌의정- 중추부사를 역임하다가
1617년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모함을 받아
1618년 삭탈관직되어 북청으로 유배되고 그해 북청에서 사망하였다.
장지는 포천에 예장하고 포천 화산서원에 제향 하였다. .
그는 안타깝게도 명예롭게 물러날 시기를 잘못 잡은듯 싶다.
위 사람도 경주이씨이다.
이것은 이항복 후손 으로 고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조상을 찬미하여 새긴 글이다.
이항복 생가터 필운대는
배화여고 건물에 가려있어 물어물어도 찾기가 어려운 곳에 있고,
중간 중간 안내 간판이 없어 정말 어렵게 찾아 보았다. 회장의 집념 아니면 못찼았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배화학당 설립 100주년/ 110주년 기념탑이다.
배화학당 설립자 조세핀. P. 캠벨, 그는 185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21세에 결혼하여 자녀 둘을 두었으나,
27세에 남편을 잃고, 이어서 두자녀 마져 잃었다.
33세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10년을 활동하다가,
1897년 44세에 첫 여성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였다.
1898년 종로구 내자동(세종회관 부근)에 캐롤라이나 학당을 최초설립하였고,
1903년 배화학당으로 개편하였다.
1918년 65세에 안식년을 얻어 고향 미국으로 갔다가
다음해 배편으로 귀국하였는데, 당시 장기간 왕복 항해에 건강을 해쳐서 병을 얻어
1920년 67세로 사망하였다. 묘지는 양화진에 있다. .
동향으로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이터는 참으로 좋아 보였다.
다음은 화가 청전 이상범 가옥을 찾았다.
이집도 물어 물어 겨우 찾았다. 간판 정비가 많이 아쉬웠다.
코너 코너에 약도와 현위치 & 간판을 재정비 해야 할것이다.
오는 8월에 구청에서 정비를 한다니 기대를 해본다.
생전에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인데,
저기 보이는 그림 그리는 소품/도구들이 그대로 보존 전시되고 있었다.
이 그림은 원본이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가 3 미터가 넘고 폭이 2 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에 삽화를 넣었던 그림들이란다.
이분이 네째 며느님으로 금년 81세라고 말한다.
시아버님 유품을 보전 관리하는 책임감이 대단하시다.
어른께서 손수 쓰시던 유품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설명과,
화실 바닥에 콩풀 먹인 재래식 장판을 깔았다는 설명과,
그림에 대한 설명,
그리고 습도 조절을 위해 방 옆에 수족관이 있었다는 설명까지 자세히 열성적으로 설명하신다.
틀히 강조하시는 말씀은
손기정 마라톤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이 당시 이상범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작품임을 널리 홍보해 주기를 당부 하신다.
이상범 화백의 손때가 묻은 아기자기한 소품들.
앙징스런 주전자와 찻잔이다.
여기는 살림집 공간으로,
화실건물보다 위쪽에 붙어있는데,
다른사람에게 팔린 것을 구청에서 재구입하여
금년 8월에 살림집과 화실을 연결하여 본래대로 복원한다고 한다.
루하동천
누상동 누하동이 있는것으로 보아 중요한 누각이 있었던 모양인데 - - - .
찬방마루.
마루아래에 시원한 샘물줄기가 있었다는 며느님의 설명.
성의를 다해 자세히 설명하시는 며느님 81세 참 곱게 늙으셨다.
행랑채 손님 접대방에 걸린 그림을 설명해 주시는 할머니.
누하동천 살림집 남쪽 담벽에있는
충신(忠信) 글자 부조인데 우측 두글자는 떨어져 나깄다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