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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행 현장을 답사 하였습니다.(13.12.26)

소불 笑佛 2013. 12. 28. 02:06

 

조선신궁

일제는 한국의 기맥을 누르고 백성들의 독립정신과 역사적 혼을 빼기 위해,

남산의 명당터,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조선 신궁을 세웠다.

 

조선 신궁은 1920년 부터 남산 경사면을 잘라내는 토목공사를 시작하여 1925년에 완공하였다.

아래 배치도와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궁 건물을 3단으로 짓고 신궁에 오르는 계단을 축조하였다.

 

조선신궁에는  일본의 國祖神인 "아마데라쓰 오오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모셔 놓았다.

아마데라쓰 오오카미는 태양의 여신을 뜻한단다.

 

 

 

 

 

해방 직후의 조선신궁 모습이다.

 

계단아래 입구의 모습.

계단이 상당히 웅장했던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이 계단이 위치적으로는 원래 신궁 계단이 있던 일부 위치일 것이다.

 

 

이곳 수목으로 조성한 곳이 구 식물원 자리이며, 신궁이 있던 곳이고,

 

이곳 광장 진입로는 조선신궁 바로앞 광장 표면 모습일테고, 

  

 

여기 삼순이 계단은 원래는 없던 경사면에 어린이 회관을 지을때 새로 건축한것으로 보인다.

 

조선신궁을 짓기위한 토목공사를 할때,

이곳에 있던 한양도성 777m를 훼손하여 경사면 위쪽은 파내고 경사면 아래쪽은 흙을 덮어 메웠다.

 

지금 그 유실된 한양도성을 발굴해 보니 지하 3~4m 아래에 원형대로 한양도성이  발굴되었다.

   

 

 

 8.15 광복후 조선신궁은

일본인들이 昇神式(승신식)을 하여 모셨던 신위를 하늘로 보내고,

9월 7일부터 자진 해체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후 이승만 자유당 정권때,

그 자리에 국회의사당을 지을려고 기공식까지 하였는데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박정희 대통령시절 국회는 여의도로 가게 되었다.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던 길목에,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중 김구선생과 이시영 선생동상을 건립하였으며,

조선신궁터에 안중근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1970년 개관한 구 기념관이 경사진 뒷편에 있으며 낡고 노후하여

2010년 10월26일 의거 101주년 기념일에

국민성금과 정부 예산으로 지하2층 지상 2층으로 재건립하였다.

                  

  

                

 

    

 

 

김구선생 동상

 

건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상.

 

다음 사적지로 이동중.

 

 

한국 통감부

1906년에 남산중턱에 설치한 한국통감부는, 

현재 리라초등학교 바로 아래에 위치 했었다. 

 

 1910년 경술국치이후 조선총독부로 명칭/조직을 변경하여 전 육군대장 (제3대 한국 통감)

"데라우찌 마사다케" 자작이 초대총독으로 부임하면서 헌병과 경찰조직으로 무단통치를 하던 서슬 퍼런 장소였다.  

 

제1, 2, 3 대 통감

 

 

1921. 9. 12 일  이곳 총독부에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투척하였음.  

 

 

 

한양공원

1910년 총독부 주변을 한양공원으로 조성하여,

대한제국 접수의 근거지 역할을 하던곳이다.

 

조선사 편수회

이곳 총독부 주변에 조선사 편수회 조직하여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찬란한 단군시대 실존역사를 신화로 둔갑시켜

일본보다 뿌리가없는 반도민족으로 식민사관을 조작한 가슴 아린 역사적 민족사적 우리시대의 현장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서는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선총독부 확장이전

남산의 총독부 (왜성대)가 협소해지자

1916년부터 총독부를 확장 이전할 곳을 물색하다가,

경복궁내에 광화문등 많은 시설물을 헐어내고 1918년 7월에 착공하여 1925년 10월에 낙성하여 이전한다.

 

북악산으로부터 뻗어나오는 경복궁 지맥을 차단하는 위치에 날일자(日)의 총독부 건물을 배치하는 간악함을 보였다. 

 

1951년의 중앙청(구 조선 총독부) 건물 모습.

 

1995년 8월 15일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통감부 관저 

한편 한국 통감부 관저는 이곳 남산중턱 (왜성대)에 있다가

1937년 경복궁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관저 터에 신축하여 1939년 완전 이전하였다.

 

1911년 위 사진의 관저 앞에 서 있던 은행나무는

2013년 12월 26일 이런 모습이었다.

가지가 몇개 줄었고 까치집만 없어졌을뿐 똑같은 자태로 지키고 있었다.

 

     

 

 

 

 

 

 

위 표지석은

20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주관으로 서울시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치한 것이다.

글씨는 신영복이 썼다.

원래 이터는 철종때에 지은 鹿川亭(녹천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터인데 - -

1884년 갑신정변때 일본 공사관이 불타자

녹천정 터를 빼앗아 새로 공사관을 지었고,

 

이것이 1906년 이토오 히로부미 초대 통감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이후에 1939년까지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다.

 

 

한일 병합 조인

1910년 8월16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곳 통감 관저로 불려가서

                   (일본 호우피해 위문차 방문 설,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동행.) 

                    제3대 한국통감 데라우찌로부터 한일병합조약 문건을 받았고,

1910년 8월 18일 이완용이 주재하는 대한제국 각의에서 병합 조인 내용을 합의 의결 하고,

 

1910년 8월22일 순종황제가 기거하던 중명전에서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앞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총리대신 이완용과 데라우치의 이름으로 조인 완료.

                   (이때는 삼엄한 병력호위/위협 속에서 압박,  지방에 있던 군대 경성에 집결 대기 상태)

 

중명전 모습

 

 

황제 칙유 및 병합조약 선포.

순종황제가 병합조약 내용에 동의하지 않고, 백성들의 저항을 의식한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은 일주일간 지체하다,

그해 8월 29일에 이완용이 시종원경 윤덕영을 시켜  황제의 어새를 몰래 찍어

(국새가 아닌 고종때 문서에 사용하던 어새로, 통감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황제 칙유병합조약을 공포 하였다.

 

황제는 끝내 칙유에 서명을 하지않고 어새도 날인하지 않았으나,

그것으로 식물국가이던 대한제국의 목숨은 완전히 멸하고 말았다.  國恥日이다.

 

  

 이것은 황제가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위임장이다.

황제 수결 (싸인)과  국새가 찍혀있다.  고로 이 문서는 유효하다고 본다.

 

병합 조약문 원문 내용 편집.

 

조약문 해설 편집.

 

8월 23일자 일본 신문에 한국병합을 태황제 (고종황제)가 보고받고 즉시 가납하였다는 내용으로 보도됨. 

 

 

이 자료는 순종황제 유언이다.

순종은 1926년 4월25일 06:15분에 5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

황제는 숨을 거두기 전에 궁내대신 조정구를 불러 구술로 유언(유조)을 하였는데,

 

1926년 7월 28일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 기관지 "신한일보"에 보도 되었다. 

 

순종황제 사진 (1874.2.8 - 1926.4. 25) 

 

순종황제와  영친왕 

 

영친왕은 정말 기구한 인생을 살다간 쇠락하는 국가의 왕족이었습니다.

1897년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으로 태어난 영친왕은 순종황제가 후사가 없어 1907년 황태자에 책립되었으나,

그해12월 이토오히로부미는 11살 짜리 황태자를 일본으로 끌고가 공립학교에 보내고

일본여자 이방자 여사와 혼인시키는 등,

정신적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며 생활하다, 끝내 정신줄을 놓고 살았는데,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주선하여 국적을 회복시키고 ,

56년만에 만신창이의 몸으로 귀국하였다가 1970년에 돌아가셨다.

 

한편, 초대총독 데라우찌는 총독부임 6년후에 일본내각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데라우찌 총독은 조선의 문화재 특히 서적을 모조리 수집하여( 18,000 여권 ) 본국으로 빼 돌렸다가

1957년 아들이 야마구치 현립대학에 기증하여 지금도 엄청난 조선 문서자료가 그곳 도서관에 있다.

 

진정한 광복은 현재 진행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