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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융능과건능!~~
소불 笑佛
2011. 10. 30. 17:26
~*^^*융능과
건능~*^^*
<융릉(隆陵) 사도세자와 경의왕후 능>

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사
뒤주 속에서 죽었는데,
왕세자로 책봉된 장헌세자의 호탕하고
난폭한 성격을 못마땅히 여겨 오던중
후궁인 문숙원과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을 고발해
세자는 1762년 허기와 더위로 질식사하는
끔찍한 궁중참극을 빚게 된다.
궁중의 기강과 사회개혁을 위한 용단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만 부모로서 애통함을 금할 수 없어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려 위로한다. 사후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思悼世子)로
시호가 내려지고 정조 즉위 후
장헌세자(莊獻世子)라 하였다가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헌세자비 경의왕후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로서(영조 20)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 즉위 후 혜경(惠慶)이라 하였다가
경의왕후로 추존되었다
혜경궁( 경의왕후)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것으로
부군(夫君) 사도세자가 부왕(父王)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및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당쟁의 복잡미묘한 문제 등
여러 무서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날을 밟으며
살아온 것 같은 일생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一代記)한중록이다
정조는 재위 24년간 능관리를 위해
부근 화산일대 13개 마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재 한 삼태기씩을 모아 뿌리게 한다.
솔밭에 송충이 극성허면 손수 나가
송충을 잡고 심지어 잡은 송충을 입으로 씹어
송충구제를 독려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빽빽한 상록수와 송림 사이로
삐죽삐죽 내민 노송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잔디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색상이 독특하다.
조선조 왕릉중 어느 능보다 뛰어나다.
26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능역은
짙은 관목숲과 황금잔디 맑은 샘등
신선하기 이를데 없는 별천지를 이룬다.
정조는 불행한 삶을 보낸 아버지(사도세자)의 묘소를
조성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같은 격의 어느 원(園)보다도 훌륭히 상설(象設)을 하였으며,
이후의 능묘석물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용주사를 지나 융.건능으로 갈수 있다
입장료는 1.000원 매표소에서
능으로 들어 가는 길은 휴양림에 들어서는듯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김도 빼놓을 수없는
즐거움 촉촉한 흙길은 길 옆으로
졸졸 흐르는 물 편안함 마져든다
식수도 몇군데 준비 되어 있어
가족들 연인 나들이 삼아
역사에 눈을 돌려도좋을 곳이다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작은 연못에
수련도 눈길을 끈다
융능과 건능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
능 가까이는 못들어 가도록
팻말을 붙혀 놓앗다<들어 가지마세요!~>
<융릉(隆陵) 사도세자와 경의왕후 능>

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사
뒤주 속에서 죽었는데,
왕세자로 책봉된 장헌세자의 호탕하고
난폭한 성격을 못마땅히 여겨 오던중
후궁인 문숙원과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을 고발해
세자는 1762년 허기와 더위로 질식사하는
끔찍한 궁중참극을 빚게 된다.
궁중의 기강과 사회개혁을 위한 용단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만 부모로서 애통함을 금할 수 없어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려 위로한다. 사후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思悼世子)로
시호가 내려지고 정조 즉위 후
장헌세자(莊獻世子)라 하였다가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

장헌세자비 경의왕후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로서(영조 20)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 즉위 후 혜경(惠慶)이라 하였다가
경의왕후로 추존되었다
혜경궁( 경의왕후)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것으로
부군(夫君) 사도세자가 부왕(父王)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및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당쟁의 복잡미묘한 문제 등
여러 무서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날을 밟으며
살아온 것 같은 일생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一代記)한중록이다

정조는 재위 24년간 능관리를 위해
부근 화산일대 13개 마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재 한 삼태기씩을 모아 뿌리게 한다.
솔밭에 송충이 극성허면 손수 나가
송충을 잡고 심지어 잡은 송충을 입으로 씹어
송충구제를 독려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빽빽한 상록수와 송림 사이로
삐죽삐죽 내민 노송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잔디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색상이 독특하다.
조선조 왕릉중 어느 능보다 뛰어나다.
26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능역은
짙은 관목숲과 황금잔디 맑은 샘등
신선하기 이를데 없는 별천지를 이룬다.
정조는 불행한 삶을 보낸 아버지(사도세자)의 묘소를
조성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같은 격의 어느 원(園)보다도 훌륭히 상설(象設)을 하였으며,
이후의 능묘석물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용주사를 지나 융.건능으로 갈수 있다
입장료는 1.000원 매표소에서
능으로 들어 가는 길은 휴양림에 들어서는듯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김도 빼놓을 수없는
즐거움 촉촉한 흙길은 길 옆으로
졸졸 흐르는 물 편안함 마져든다
식수도 몇군데 준비 되어 있어
가족들 연인 나들이 삼아
역사에 눈을 돌려도좋을 곳이다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작은 연못에
수련도 눈길을 끈다
융능과 건능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

능 가까이는 못들어 가도록
팻말을 붙혀 놓앗다<들어 가지마세요!~>
출처 : 벽제초교22회(둘리회)
글쓴이 : 용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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